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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쓰맨 여운형

체육활동을 자주독립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전 인민의 기초체력과 투쟁의식을 북돋는 체육행정가로서의 여운형의 면모를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가슴에는 일장기 등에는 조선!

가슴에는 비록 일장기를 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37년, 베를린 올림픽 출전을 망설이는 손기정 선수에게 한 독려의 말

손기정, 남승용 선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해 마라톤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손기정은 여운형의 둘째 아들 여홍구의 동창으로 어릴 때부터 여운형과 교류하였고, 여운형을 정신적 지도자, 스승으로 여겼다. 그런 손기정이 일제강점기에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참가해야 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을 때, 여운형이 출전을 독려했다.

손기정이 금메달 시상식에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리자,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던 여운형은 그 뜻을 헤아려 일장기를 삭제한 사진을 게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중앙일보는 일제의 거센 압박에 밀려 폐간하게 된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서 일장기를 가리는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서 일장기를 가리는 손기정

국제 무대에서 조선을 외치다

해방 직후 여운형은 조선체육회를 재건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1947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1947년 5월에는 조선올림픽위원회(KOC)를 조직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여운형은 IOC 부위원장이었던 에버리 브런디지와 9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조선의 상황과 IOC위원회에 가입하고자 하는 의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는 에버리 브런디지가 각종 편지, 비망록, 회의록, 사진, 선물, 기념품 등을 모아 놓은 ‘브런디지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컬렉션에는 이상백, 전경무, 여운형, 이원순, 이기붕, 장기영 등 우리나라 체육계 인사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 한국의 IOC 가입 여정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9백여 장의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다.

IOC부위원장을 역임한 에버리 브런디지 컬렉션

IOC부위원장을 역임한 에버리 브런디지 컬렉션

1947년 6월 스톡홀름에서 IOC회의가 열렸다. 조선의 IOC회원국 승인여부를 논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곳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던 전경무 부위원장이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지만, 여운형은 포기하지 않고 급히 재미동포 이원순에게 타전하여 총회에 참석하게 했다.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

브런디지가 여운형에게 보낸 편지

전경무 조선체육회 부회장 영결식에서의 여운형 육성

전경무 조선체육회 부회장 영결식에서의 여운형 육성

결국 이 스톡홀름 총회에서 조선올림픽위원회는 IOC회원국으로 정신 승인을 받았고, 동시에 국제올림픽대회 참가 자격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1948년 8월 15일)되기도 전에 국제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이름으로 처음 참여한 올림픽은 1948년 제5회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이었다.

IOC가 KOC에게 알리는 IOC 인준 통보 편지

IOC가 KOC에게 알리는 IOC 인준 통보 편지

올림픽 후원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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